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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완벽주의"를 가진 나를 사랑하는 법

이미지 출처 :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홈페이지

유느님 이후로,

또다른 느님이 다가왔다.

"오느님", 딱 달라붙진 않는데...

"은영느님?"

 

매주 주말이면, 오은영 선생님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오히려 너무 몰입할까봐 스킵하면서 보고나, 하루 그 다음 날 찾아 보기도 한다.

내 이야기 같아서, 주변 사람 이야기 같아서 펑펑 울까봐.

주로 출연하는 건 연예인지만, 연예인은 직업일 뿐 다 똑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인간이구나를 느끼게 한다.

 

갑작스럽게 탈퇴를 선언했던 초아님이 나왔다.

언제나 열심히 하는 모습이 호감이었던 연예인이었는데, 인기 최절정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개인사가 있으려니 했는데, 

다는 아닐 지라도 그 때의 마음을 조금을 알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완벽주의.

100이 아니면, 0과 같다는 비합리적 신념.

100이 될 수 없으면, 무의미해지고, 내 노력이 부족했다고로 귀결되어 또 나를 혹사하는 패턴.

 

완벽주의가 가지는 장점은 분명 있다.

동기를 강화하고, 퍼코먼스의 퀄리티를 높여주며, 성장을 하게 한다.

그러나,

모든 영역에 언제나 완벽할 순 없다. 사람은.

완벽주의의 결론은 결국은 번아웃이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노력하다 지치는 거다.

 

이미지 출처 :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홈페이지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자신의 완벽주의를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주변의 사람들한테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나한테는 너무 편하게 당연하게 한다.

 

"더 노력했어야지."

100이 아니면, 진짜 의미가 없는 걸까.

왜 나는 나를 돌봐주지 못하는 걸까.

내 친구에게라면, 똑같이 그런 말을,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홈페이지

 

자신에게 유독 가혹한 완벽주의자들.

하루, 한 시, 일 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굴레에 빠진 완벽주의자들에게

오느님은 말한다.

"나를 사랑하라"고.

되게 당연한 말이고, 뻔한 말인데,

서사가 있고, 설명이 있고, 따뜻한 격려가 있으니,

다정하게 다가온다.

 

나를 사랑하는 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아픔과 감정을 수긍한다.

부정적 감정을 쓸 데 없다고, 효율적이지 않다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경험에서 느껴지는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해주는 거다.

 

감정은 죄가 없다.

어떤 상황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고,

조절해야 할 것이 아니다.

선택은 그 감정에 따른 행동에 대한 것일 뿐,

감정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거다.

 

예전에는

슬픔, 외로움, 자괴감, 열등감 등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감정들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알아봤자 걔를 우선순위를 둘 수도 없을 뿐더러 그 감정에 휘둘려서 사회적 실수를 하게 될 까봐 두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이 조금 다르다.

내가 뭘 원하고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감정 자체가 이제는 캐치하기도 힘들 뿐더러(거친 사회와 인간들에게 깎이고, 다듬어졌다....이제는 존재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어떤 범위 안에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주체인 내가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려면, 주체의 감정을 알아야 한다. 

감정에 따라 행동할 지, 좀 더 다른 방식의 행동을 선택할 지는 내 몫이다.

 

디폴트는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완벽할 수 없고,

세상은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